*이 글은 Talcott Parsons. “Illness and the Role of the Physician: A Sociological Perspective.” American Journal of Orthopsychiatry 21, no. 3 (1951): 452-460. DOI: https://doi.org/10.1111/j.1939-0025.1951.tb00003.x를 번역한 것이다.
*절 구분은 역자가 임의로 한 것이며 원문에는 없다.
Ⅲ
우리는 이제 세 번째 주요 문제 영역, 치료자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그가 병원적 과정을 반전시키는 것과 관련된 동기적 과정과 맺는 관계에 대한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 과정은, 널리 인식되기로, 어떤 의미에서는 발병과 관련된 과정을 모종의 복잡한 요인들을 적절히 고려해 준수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간략히 다뤄질 수 있는 성공적인 정신 치료의 네 주요 조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것은 정신의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지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에 의해 여기서 본질적으로, 사회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우리가 위에서 논한 발병의 핵심적인 부분을 수행하는 것의 결여를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예에서 [형성되는 것은] 치료자와 그의 환자에 의해 형성되는, 치료자가 그의 환자를 “돕는다는” 온당한 범위 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의무를 맡는 연대 집단이다. 의료 전문가의 “이데올로기” 안에 있는 치료자의 첫 의무로서의 “환자의 안녕”에 대한 강한 강조는 이 요소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전문가의 역할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당한 목적이라고 말하는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 태도를 상징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원은,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본질적으로, 넓은 허용치에서 환자가 하는 바에 의해 흔들리지 않을 것이므로, 무조건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알 수 있다시피, 이것이 치료자가 “환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도록” 의무를 진다는 의미로 무제한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요소는 가족과 같은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을 표현인 소망과 환상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특별한 허용이다. 이 허용은 불허와 그와 같은 형식으로의 그러한 표현에 대한 정상적인 제재가 유예된다는 것을 의미함에 틀림없다. 물론 그러한 “실연實演”에 명백한 제한이 있다. 일반적으로 그 허용은 구두와 몸짓의 층위에 한정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치료 과정의 필수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허용에 대한 준수는 그것에 대한 치료자의 반응에의 아주 중요한 규제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치료자가 환자의 일탈적인 소망과 환상에서 —암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표현된 기대에 화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정하듯이, 가장 근본적인 소망은 그 개인과 타인 사이의 호혜적 상호 작용과 관련되어 있다. 소망을 표현하는 것은 사실 상호 보완적인 역할에서 교류하기 위해 타인을 초대하는 것이고, 만약 그것이 일탈적인 소망이라면 상대방을 상호 교류 안으로 “유혹하기” 위한 시도이다. 이것은 긍정하는 태도만큼이나 부정하는 태도로 이루어진 사실이다. 전이에서 치료자에 대해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은 소망에 대한 부분적인 만족일 뿐이다. 온전한 만족은 치료자가 결과적으로 화나게 됨에 따른 응답을 요구할 것이다. 때로 “역전이”라고 불리는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치료자가 그의 역전이적 충동을 통제해야 한다고 기대되며 그러한 통제가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치료의 조건이라는 것은 꽤 분명하다. 환자에게 이러한 전이 반응에 대한 투사적 성격을 보임으로써, 상호 교류에 대한 거절은 환자에 의한 통찰의 달성을 가능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넷째, 지원의 무조건적인 요소와 대조하여, 치료자에 의한 승인의 조건적 조작이 있다. 치료자가 허가를 주거나 주지 않는 것은 환자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판단의 유효성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으로 보인다. 환자에 의한 판단의 수용은 이러한 행위에 승인을 보여준 치료자와 함께 성숙한 평면에서 문제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상대적으로 보여준다. 명시적인 거부는 치료에서 거의 드물게 사용되지만, 긍정적인 승인을 주지 않는 것은 확실히 매우 의미 있다는 것이 아마 중요할 것이다.
준수하는 것이 중요한, 성공적인 정신치료의 네 가지 조건들은 모두 어느 정도에서 우리 사회의 치료자가 전형적으로 상정하는 의사의 역할 “안에 들어 있고”, 모두 어느 정도에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신치료의 의식적이고 명시적인 이론이나 기술에 독립적인, 그 역할에서의 행동의 양상들이다.
환자의 안녕에 우선적으로 정향된 의사의 역할에 대한 정의와 지원의 관계는 이미 언급했다. 허용의 요소는 “허가”가 신체적 결함을 가진 환자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환자들에게까지 기여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사회적 승인에 근간을 두고 있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그의 특별한 책임 덕에, 의사는 그러한 허가를 만들 특별한 의무가 있다. 하지만 세 번째 [조건에서 말한 것처럼], 의사는 그의 역할의 정의상 환자와의 특정 호혜 안에 들어가지 말 것을 분명히 명령받거나, 환자들이 그에게 가하는 압력에 대해 보호받는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관계에서 내밀한 정보를 주는 것은 상호적 친밀함의 상징이지만, 의사는 그의 사적인 일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 의사-환자 관계의 많은 특징들, 의사가 몸을 만지는 일과 같은 것은 성적인 반응을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의사의 역할은 그러한 전개를, 비록 그것이 환자에게서 시작됐을지라도, 억제할 수 있도록 정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의 문제만을 고려하도록 특히 제한되어 있는 의사 역할의 정의와, 인간적인 감정에 연루되지 않는 “비인격적”, 사무적 태도를 지키라는 명령은 환자의 일탈적인 기대에 응답하는 것에 대한 그의 거부를 정당화하고 적법화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의사의 과학적 훈련에 대한 위신, 기술적 능숙함에 대한 그의 평판은 그의 승인에 권위를, 그의 판단에 대한 [환자의] 승인의 기초를 부여한다.
Ⅳ
의사 역할의 모든 근본적인 특징들은 정신치료의 기술적 작동에 독립적으로 주어진다. 게다가 그것은 프로이트의 시기 혹은 의료계의 중요한 분과로서의 정신의학의 시기 이전에 오랫동안 제도화되었다. 이 사실이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첫째, 이는 사실 신중하고 의식적인 정신치료가 그 과정의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 준다. 더욱이 의사 역할의 이러한 측면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의료적 기술”이라고 오랫동안 불려 온 것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의사가 그것을 알든 혹은 바라든 간에, 의사로서 능숙하게 행동하는 데서 그가 실은 항상 환자에게 심리치료적 효과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그럴 듯하다. 더 나아가, “정신에 대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사례에도 이것이 중요하다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우선 “정신적 요인”이 겉으로는 신체적인 사례의 상당히 큰 부분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병인론에서의 정신적 요인 외에도, 질병은 항상 어느 정도는 환자에게 압력이 주어지는 상황이며, 그러므로 압력에 대한 그의 반응을 다루는 기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압력이 정신병리적 결과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말이다. 의료적 기술과 신중한 정신치료 사이의 필연적 연속성은 그러므로 의사의 기능의 본성에 일반적으로 깊이 뿌리내려져 있다. 근대적 정신치료는, 서구 사회의 사회 구조에 이미 정립된 것으로서의 의사의 역할 위에 세워져 왔다. 그것은 기존의 역할 양식을 이용하고, 그 특징들의 일부를 연장하고 개선했지만, 의사와 환자의 역할은 정신의학 이론의 적용으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두 번째의 주요한 함축은, 의사 역할과 질병의 이러한 특징들이 정신병리학 이론의 적용과는 독립적으로 사회 구조 안에 구축되었다면, 그것이 고립된 현상이며 이 하나의 맥락에서의 중요함에 국한되어 있음이 드러난다면 정말 이상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믿을 만한 이유가 주어졌듯이 질병이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사회 체계 안의 압력에 대한 동기적 반응이라는 공통 자본에 대한 여러 표현 양식의 묶음 중 하나라면, 이는 특히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에 대한 적절한 용인만 있다면 우리는 같은 이 특징들 중 몇몇이 사회 체계 안의 다른 역할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보일 수 있다. 당신에게 특히 관심을 끌 만한 예시를 들자면, 정신치료적 과정과 아이들의 규범적 사회화의 과정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크다. 그것은 어느 정도, 아이에게는 부모 두 명이 필요한 듯하지만 신경증 환자는 한 명의 정신의학자와만 [그 과정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지도指導, 사회 안에서의 그리고 많은 타인들과의 갈등 해결이라는 제도 안에서 수많은 동일한 요인들이 작동한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정신치료의 실제 기술적 작업에서 가시적인 과정들은, 개인 안에서 그리고 개인에게 작동하는 힘의 전체적인 균형과의 관계에서, 수면 위에 돌출된 빙산의 일부와 닮아 있다. 그 표면 밑에 있는 것은 훨씬 크고, 어떤 관점에서는 아마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이는 신체적 정신적 질병과 그에 대한 대응이라는 현상들이, 그것이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더 사회 체계의 전반적인 평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인다. 이 일반화로부터 우리는 일반적인 추론이 아닌 어떤 것에 가까워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난 세대 정도에서 정신 질환이 상당히 증가했다고 여겨지는 듯하다. 통계가 분명히 부분적이며 진단과 치료의 유행하는 방식이 대단히 변해 왔기에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실이라 치더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단순히 일반적으로 증가하는 사회적 분열에 대한 지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질병의 역할에는 어떤 긍정적인 기능들이 있다. 환자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그의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언되고 그는 영향들을 재평형화하는 방식으로 위치 지어진다. 정신 질환의 증가가, 다른 표현 방법들에서 질병의 역할로 일탈하는 경향이 전환되는 것을 구성한다고 말하는 것도 전적으로 가능한데, 그 결과는 다른 어떤 것이 그러할 것보다 사회의 안정성에 덜 위험하다. 의사가 “문제적 사례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집단에 대한 돌봄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 한, 그는 그가 속한 사회에서 전반적인 힘의 균형 안의 전략적인 위치에 서 있다.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어는 중요하다! 정체성 우선 언어와 사람 우선 언어 사이의 오래된 논쟁 (0) | 2023.01.10 |
---|---|
질병Illness 그리고 의사의 역할: 사회학적 관점 (통합본) (0) | 2023.01.02 |
질병Illness 그리고 의사의 역할: 사회학적 관점 2 (0) | 2022.10.02 |
질병Illness 그리고 의사의 역할: 사회학적 관점 1 (0) | 2022.09.26 |
우리는 여기에 당신의 영감을 위해 있지 않다 (0) | 2022.08.16 |